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짜장면이 나에게 준 새로운 인생
5년 전, 그날은 내 몸과 마음이 살아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만큼 몹시 추운 날이었습니다.
그 당시 30살이었던 나는 몇 년 동안 일하면서 모았던 1억과 부모님이 대신 갚아주신 수억을 날리고도 3번의 도박 재발로 인해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로지 죽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죽고 싶었다는 것 보다는 가족 때문에 미안한 것, 주위 지인들에게 미안한 것, 내 상황이 억울하고 답답했던 것 등 온갖 핑계로 도박했던 나를 주위 상황 때문이라고 어리석은 합리화와 함께 나를 더욱 포장하고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 넘쳐났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날은 몇 번의 자살시도를 실패하고 몇 일째 도박을 하면서 오로지 5년을 돈을 보고만 다녔던 회사를 무단결근 하고 수중에 남아있던 만원도 안 되는 돈과 다시 죽으려고 시도하기 위한 넥타이 하나만을 가지고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고 싶었습니다. 아무 계획도 없었고, 몹시 추운 날이었기에 집 앞의 버스정류장에서 번호도 기억나지 않는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안에서 1시간 동안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디를 가는 버스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버스를 타면서 평생 멈추지 않고 그냥 조용히 달려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시간대가 출근 시간이었고, 등교하는 학생들, 웃으면서 얘기 나누는 연인들, 자식과 손을 잡고 미소 짓는 가족들,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보니 숨도 쉬지 못할 답답함, 후회와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 왔습니다.
동서울터미널이 보였습니다. 나는 무작정 내렸고, 어디든 떠나고 짜장면이 나에게 준새로운 인생경남센터 이유쾌37Story 06 | 경남센터싶었습니다. 남은 돈으로 갈 수 있는 곳은 ‘양평’이었습니다. 양평행 버스에 타서 여기저기서 전화로 울리는 폰을 끄고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버스가 도착하고 양평터미널에 내려서 낯선 환경, 낯선 분위기 등은 오히려 편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돈이 없어서 갈 수 있는 곳,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고 다시 죽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터미널에서 몇 십 분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외진 곳에 기찻길이 있었습니다. 숨이 막혔고, 눈물이 흘렀고, 너무 무서웠습니다. 무작정 터미널을 뛰쳐나왔습니다. 아무리 내 상황을 내려놓고 힘들다고 생각해도 그 상황에서도 배는 미치도록 고팠고, 잘 곳이 필요했습니다. 양평의 밤은 서울의 밤과는 너무 달랐고, 밖은 사람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다. 근처에 교회하나가 보였고 그 교회의 빛은 특별한 신앙심이 없던 나에게도 희망의 빛이 손짓하는 것만 같아 문을 열었습니다. 대기하는 장소 같은 곳이 보였고, 아무도 없어 무작정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한분이 나오셨습니다.
그 분은 정말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고, 내 모양새 때문인지 “식사는 하셨어요?”라는 말을 하셨고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는 말을 했고 따뜻한 방이 있다며 잠시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식사를 지금 준비를 할 수가 없다며, 지금은 평생 잊지 못하게 된 ‘짜장면’ 한 그릇을 시켜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먹었지만 그 자리에서 그 상황에서 먹은 짜장면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습니다다. 난 무엇을 위해 도박을 위해서 달려왔는지, 큰 돈을 따서 무엇을 하려고 했는지, 몇 년 동안 도박을 하면서 짜장면 하나의 ‘달콤함’과 ‘감사함’ 조차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에 펑펑 울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많은 감사함과 행복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막연한 미래 걱정’만으로 ‘현재의 소중함‘을 잊은 채 살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 물론 몇 달간은 힘든 하루하루였습니다. 몇 년간 숨겨왔던 도박생활은 그 날을 계기로 회사에 탄로 났고, 회사 동기, 회사 선배, 후배 할 것 없이 여럿 명에게 도박을 하려고 돈을 빌려왔기에 회사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년을 다닌 직업이 없어지고, 서울에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기에 엄청난 금액의 빚만 지고 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혼자 살면서 하고 싶은 것 하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친구나 여자 친구38나의 이야기를 만나고 보내던 하루하루가 정말 큰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기가 되었지만 하루를 흐지부지 보내는 날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나에게 또 다른 전환점이 왔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1336’으로 직접 전화를 해 상담일정을 잡고 ‘도박’이라는 문제를 예전처럼 무조건 회피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히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았습니다. 어느 누구든 비슷한 생각이겠지만 내가 누구에게 이름부터 모든 것이 알려질 거 같다는 두려움과 ‘과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앞섰습니다. 다행히 부모님이 함께 방문해주셨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고, 센터에 발을 들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센터를 다니면서 한 번의 큰 재발이 있었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지 않았고 더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마음으로 금방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센터를 다니면서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 ‘도박중독도 지독한 병이라는 것’,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다는 것’ 등 긍정적인 마음과 자신감을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2년 정도 인력소를 다니면서 도박으로 잊고 지냈던 ‘돈의 가치’를 찾으려 노력하였고,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감사함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미치도록 장르를 불문하고 책을 읽었습니다. 도박 관련한 책을 읽으면서 공감과 이해를 얻으려고 했고, 자기계발 책을 읽으면서 나태해지지 않으려 노력하였습니다. 살아오면서 책 한권을 완벽하게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정말 큰 성취감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감사한 것 3개씩 쓰기’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무슨 감사한 것이 3개씩이나 있겠냐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정말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사소한 것에서부터 감사하다는 의미를 두었고 단도박을 유지하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센터를 나오면서 목요일 저녁마다 나와 같은 도박중독 문제를 가진 회복자들과 함께 ‘자조모임’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공감하고 의지하고 하는 것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곳에서 만난 인연들과 센터의 도움으로 현재는 ‘회복자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게 생애 ‘최악의 날’이었던 양평에서의 추억은 지금 생각하면 ‘최고의 날’ 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나에게 ‘도박중독’은 ‘언젠가는 오게 될 손님’이었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빠른 시기에 와 준 손님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힘든 날 읽었던 한 책에서 잊지 못하는 문구가 있습니다.
‘겨울나무는 베지 마라. 지금은 보잘 것 없이 보이고
그저 썩은 나무 같으나 많은 추위를 겪고, 고통을
겪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그 나무가 봄에는 어떤
아름다운 꽃이 필지 모른다.’
그 문구처럼 나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려고 그 힘든 고통속의 추위를 보냈고, 지금은 어느 때보다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누구보다 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을 나와 같은 ‘회복자’들에게도 꼭 전해 주고 싶습니다.
우리에게는 원하는 행복이 저 멀리 있지 않고, 따뜻한 인생의 봄이 기다리고 있다고..
출처: 2021년 회복자 성장대회 수기집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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