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재활

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희망과 꿈이라는 작은 씨앗

작성일2020-12-07 조회수611

저는 평범한 주부이자 늦깍이 학생입니다. 여행사에 다니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을 하다 결혼과 동시에 주부로만 살았습니다. 신랑의 호기심과 간곡한 바람으로 우연히 여행 중 놀러 간 강원랜드에서 카지노 도박으로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모든 재산을 잃고 거액의 빚만 남게 되었습니다. 강원도에서 죽을까 수없이 고민했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죽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오빠에게 도박문제를 고백하였습니다. 오빠의 도움으로 용기 내어 영구 출입정지를 하고 그곳을 벗어나 삶의 터전으로 돌아온 지 1년, 회복자로 저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3번째 파국 시 차를 비롯해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고 오직 빚밖에 남지 않았던 저희는 갈 곳이 없었기에 신랑 혼자서 다 뒤집어쓰고 영구 출입정지 후 시댁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미 3차례나 빚을 해결해주셨던 시댁에 거액의 빚이 더 남아 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살면서 아무렇지 않게 태연히 웃으며 지냈지만, 빚 때문에 불안하고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들 학원을 핑계로 당일치기 리무진을 타고 다니며 강원랜드를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형제, 친구, 지인에게 거짓말을 하며 돈을 구하고 또 열흘에 이자가 10%인 사채를 쓰면서도……. 


그곳으로 향할 대마다 또 많은 돈을 잃겠지, 잃으면 끝인데 어쩌나 생각하면서도 강박적으로 그곳으로 향했고 빚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작년 여름 결국 많은 돈을 잃은 채 사채를 갚아야 했기에 더 큰돈을 구할 데가 없었던 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곳에 머물며 돈을 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시부모님의 추궁과 신랑의 자백으로 제 도박사실이 모두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돌아갈 곳이 없었던 전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어 오빠에게 살려달라고, 데리러 와달라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묻지 않고 어디냐고 데리러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전날까지도 사업 자재에 쓰일 자금을 금방 돌려주겠다고 거짓말하며 조금씩 조금씩 수천을 빌렸던 그런 동생을 말입니다. 


이틀 후 장대 같은 비가 오던 날, 술의 힘을 빌려 오빠에게 도박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오빠가 비난의 말을 한마디라도 했다면 아마 좌절감과 고립감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빠의 도움을 받아 삶의 터전으로 돌아온 후, 자그마한 조카의 방에서 아들과 둘이 얼마간을 지냈습니다. 오빠와 올케언니 외에 저희 친정 식구들은 도박이 아닌 주식 때문에 쫓겨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거액의 돈을 빌려준 다른 형제들이 상처를 크게 받을 것이고 날 받아줄 수 없을 거라고 아직은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오빠의 조언… 아니 그 조언이 아니었더라도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원치 않게 도박사실을 알게 된 시댁 식구들 외에는 친정, 친구들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받을 상처를 직면하는 것과 그들의 실망의 눈초리와 비난을 받을 용기도 없었습니다. 아빠를 비롯한 나머지 형제들에게 저는 너무나도 바보 같고 멍청한 사람일 뿐이었고 더운 날 둘이 눕기에도 좁은 조카 방에서 선풍기 하나로 지내며 나오지도 못하고 죄인처럼 지내는 제 모습. 그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나이 드신 아빠는 서둘러 월세방을 구해 저를 내보냈습니다. 


처음으로 아들과 둘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비고 열악한 월셋집의 삶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고 불안했습니다. 죽을 용기도, 살 용기도, 의지도 없었던 저는 이혼을 종용하는 시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는 신랑을 향한 큰 원망과 빈손으로 쫓겨나 아무것도 없는 자그마한 단칸방의 환경을 바라보며 극심해지는 우울감을 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까? 어떻게 죽지?’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남은 건 좌절과 절망뿐이었습니다. 


도박하기 전 제 계좌에는 거액의 돈이 있었습니다. 시댁에서 신랑에게 물려주실 재산으로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란 생각만 했던 저였기에 30만 원도 안 되는 월세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조차 몰랐습니다. 근 17여 년을 일하지 않고 전업주부로만 살았고 그중 10여 년은 도박으로 살았던 비합리적인 가치관으로는 당장 일, 이백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이러한 현실은 저를 너무나도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매 순간 제 감정은 쉴 틈 없이 요동쳤고 한편으로 저의 도박 중독으로 인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게 너무 후회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쓰레기 같고 쓸모없어 보였고 ‘나 같은 건 죽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모든 게 저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했다는 그 사실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생활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도박을 하면서 돈의 개념과 크기는 너무 달라져 있었고 무력감과 좌절감, 극심한 우울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 편에 서 준 오빠에게 너무나도 미안하고 고마웠기에 무엇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강원랜드에서 의뢰해준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방문하였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를 상담해주신 팀장님의 권유로 새롭게 다시 회기 시작한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을 알게 되었고 단순히 지금 할 수 있는 제일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며 큰 기대 없이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무런 기대 없이 참여한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에서 나누는 생활철학을 통해 제가 다시금 회복해야 할 가치관과 정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때론 원망의 대상이 이해와 감시의 대상으로 바뀌게 되는 등 생각의 전환점이 바뀌는 저를 발견하기도 하고, 자만하고 교만했던 나를 다시 내려놓는 시작점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지지 모임에서 솔직한 모임구성원들의 생각과 나눔을 통해 도박으로 망가져 버린 자존감과 우울감을 위로받았습니다. 


영구 출입정지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도박이 아닌 저 스스로 끊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더욱더 단도박의 의지를 키워나갔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의 모임 참여와 한 번의 상담을 통해 저는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제 환경은 열악했고 문득 우울감과 죄책감이 찾아왔지만, 그 환경과 현실을 바라보는 제 시선과 가치관이 조금은 바뀌었습니다. 


원망의 대상이었던 신랑은 나약한 한 인간이었고 오히려 내가 품어줘야 할 미안함의 대상이었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딘가 나갈 곳도 없었지만, 집안에만 틀어박혀 나가는 것조차 싫고 모든 게 싫었던 제가 상담과 치료 프로그램 참여를 위해 두 번씩 인천센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강원랜드에서 제공하는 취업을 위한 학원비와 약간의 생활비 지원을 받기 위해 매일 직업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제가, 우울함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 가득했던 제가 무심히 참여한 상담과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을 통해 가치관의 변화와 도박 전 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면서 조금씩 세상을 향해 내딛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4개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6개월 동안 한 번도 빠짐없이 출석하면서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컴퓨터 활용 능력 1급, 전산세무 2급, 전산회계 1급 자격증을 한 번에 취득하였고 직업상담사 2급 실기시험을 치르고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지만, 무난히 합격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특히, 영구 출입정지라는 특수한 조치 아래 단도박을 무심코 대했던 저는 이 모임을 통해 평새에 걸쳐 단도박해야 할 중요성을 다시금 인지함과 동시에, 우연히 가졌던 아주 작은 희망과 꿈이라는 작은 씨앗을 뿌리게 되었습니다. 


‘나, 너, 우리’라는 꿈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 꿈은 첫째, ‘나’의 평생의 단도박을 위해 둘째, ‘너’와 관련된 시댁, 친정, 남편, 아들, 친구, 지인들에게 변화된 나를 보여 주기 위해 셋째, 저처럼 단도박을 원하는, 아직도 도박을 하는, 우연이라도 도박을 하게 될지 모를 또 다른 ‘우리’를 위해, 어마어마한 대가와 고통을 치르고 얻게 된 저의 과거를 발판삼아 중독전문가가 되어 함께 단도박 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이 고백을 했던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 수료시 그 어느 날에서 지금 전 한 발짝 더 내디뎌 현재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하였습니다. 또한 취업을 위한 직업학교에 다니면서 지원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예방강사에 합격하였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하루 앞으로 내딛는 중입니다. 


비록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벼락을 맞은 것처럼 도박사실이 들통나 사지에 몰리는 상황이 되었지만, 도박을 선택한 사람 또한 저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영구 출입정지 상담에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살면서 나름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내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던 이유가 뭘까?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더 큰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외면하고 오직 도박으로 해결하려 했던 건 무엇 때문일까?’ 빚을 갚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아니라 아마도 그곳에 가고 싶었나 봅니다. 도박이 하고 싶었나 봅니다. 제 입으로 고백하고 나서야 제대로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영구 출입정지로 인해 도박을 할 수 없으니, 아니 들통이 나고 시댁에서 쫓겨나서 더는 돈을 구할 곳이 없고 나니 그제야 도박중독자, 그게 저라는 걸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패배자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부터 생전 겪어보지 못한 나락으로 떨어진 삶을 살 게 될 거라는 것을… 그게 두려워 더 도박에 매달렸던 것 같습니다. 


“저 자신에 대한 패배감과 실망감에 너무나도 죽고 싶었지만, 날 살려준 오빠를 위해서라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상담 받은 저를, 상담에서 권유해준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에 참여를 선택한 저를, 지금 이 순간 잘했다 토닥거려 주고 싶습니다.” 


좋은 선택일 거라는 믿음으로 했던 꾸준한 상담과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에서의 모든 과정과 시간이 도박중독 변화 단계의 모델과 정신심리사회치료의 방법들이었습니다. 그 과정과 시간을 통해 중독이라는 만성적이면서 점진적인 질병으로부터 평생 관리해야 함을 인식함과 동시에 신념, 태도 행위들을 확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 도박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교만으로 인해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고통받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상담과 치료과정을 통해 초월적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며 교만했던 저를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늘봄 치료공동체 모임’ 때마다 묵상했던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힘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그리고 이들을 구별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라는 구절로 순응을 배웠으며, 마음의 평온함을 얻었고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내 힘으로 중독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언제든 중독의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제 삶을 제 맘대로 재단했던 저를 내려놓고 삶 앞에, 도박 앞에 겸손해지려 합니다. 


4번의 도박으로 인한 파국 가운데 첫 번째 파국 후 4년간 도박을 하지 않았지만 진정한 단도박의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도박을 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없었고 언제든 3년의 정지 기간이 끝나고 다시 돈이 생기면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원랜드 영구정지라는 조치를 통한 어쩔 수 없는 단도박이 아닌,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의 상담과 모임을 통하여 스스로 끊어야겠다고 다짐한 것이 진정한 첫 번째 단도박입니다. 도박을 끊은 지 1여 년밖에 안 되었지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그 시기 동안 바뀐 제 가치관과 비합리적인 신념 덕분이었습니다. 


“가치관과 신념이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단도박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상담과 모임이 끝난 후 대학편입을 하면서 중독 관련 과목 수강과 직업상담사 과정 내 심리학과 상담학을 접하고 나서 도박이 얼마나 만성적, 진행적, 치명적 질병인지 그대로 두면 점점 더 심해지고 고치기 어려운 것인지 또 얼마나 비합리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게 되면서 저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론적인 방법이 아닌 제 경험으로, 도박에 대한 치료에 앞서 예방이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강원랜드에 가기 전에는 평생 도박을 해 본 적도 없고 화투조차 몇 번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강원랜드는 별천지였고 나도 모르는 사이 도박중독자가 되어있었습니다. 


도박중독에 대해,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는 누구나 도박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만나 본 사람들은 한때 서울에 있는 대형병원 원무과 과장이었고, 서울 유명대학의 교수였고, 잘나가는 사업가였고, 여러 개 체인점을 둔 음식점 사장이기도 했습니다. 저처럼 평범한 주부나 착실한 직장인이었던 사람들이 도박중독으로 이혼하고 망가져 가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 또한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었을 겁니다. 


오프라인 도박이든 온라인 도박이든 그 금액이 어떠하든 모든 기저는 같기에 도박으로 인해 고통받는 건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영구 출입정지를 하면서 전문위원에게 마지막 서명하기 전 물었던 “정말 제가 잘하는 걸까요?”라는 질문과 “네, 잘하고 있는 겁니다.”라는 대답. 작년 여름 서명을 하는 순간, 현실의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질 일 밖에 남아있지 않았던 사실을 직면해야 한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말 몰랐습니다.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도박으로 내 시야를 가렸던 그 현실을 직면했을 때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이 글을 쓰는 현재의 제 모습은 그 순간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제 경험으로 그 평범했던 누군가가 도박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제가 경험한 결과로 그것은 끝이 아니라 남은 인생을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지금 이 순간 도박으로 나와 내 주변이 고통받고 있고, 도박을 끊으면 모든 게 다 끝이고,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이 도박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 최악과 현실을 직면해 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독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여전히 갚아야 할 빚은 많고 생활고는 계속될 것 같고 20년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것도 두렵습니다. 문득 우울과 좌절, 죄책감이 밀려들기도 하고 때론 언제 어디서 도박문제에 다시 넘어지지 않을까도 두렵습니다. 삶이 지치고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제 삶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정말 한 치 앞도 모르지만, 삶이 궁핍하고 고단할지라도 도박을 위해 돈을 구하지 않아도 되고 돈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오로지 도박만 생각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박의 노예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이기에 감사합니다. 


결과와 과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더 나은 선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면 한번 도전해 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 선택과 노력이 모여서 결과를 이루게 될 것이고 조금은 더딜지라도 더 나은 상황이 될 것이고 어쩌면 살만하다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의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모든 사람에게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지 못했고 단단하지 못하지만, 오늘 하루도 도박을 안 하는 삶을 선택하며 용기 내어 도전해 보려 합니다. 여전히 불완전하고 불안하며 부족하지만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길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출처: 2020년 회복자 성장대회 수기집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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