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내가 행복하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진다
지금도 그곳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그곳에는 음악과 춤이 있었고, 곳곳에 고운 색으로 빛을 비추는 아름다운 풍경이 마치 신세계였습니다. 때론 즐거웠고 휴식처 같은 편안함을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전혀 모른 채,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도박을 즐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움은 사라지고, 하루하루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19년이라는 세월 동안 도박중독자임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크게 한방을 터트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누군가에게 매일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신이 들어 나를 바라보니 거짓된 삶으로 찌들대로 찌들은 내가 보였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초라해서 “너 어떡하냐?”라는 질문을 마음속으로 수없이 했습니다. 아내에게 나의 심각한 도박병을 고백한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더는 가족에게 고통 주고 싶지 않았고, 두 딸에게 나쁜 아빠로 남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아내는 오랜 세월을 남편에게 속으며 살았다고 생각하니 분하고 억울했나 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울분을 토했고 무엇보다 남편의 도박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거에 자신에게 화를 내며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아내는 고민 끝에 저에게 상담받을 것을 요구하였고, 센터를 찾았습니다. 상담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단도박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행복”이라는 것도 찾게 해주었습니다. 과거보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고 있지만, 오늘이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내일이 기다려집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목욕탕에 가면 요구르트를 사주시던 모습이 몇 안 되는 따뜻한 기억입니다.
도박으로 힘들어질 때마다 아버지를 닮아 도박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술을 드시고 들어오시는 날에는 아버지가 무서워 잠자는 척을 해야 했고, 친구분들을 집으로 불러 도박을 하시는 날에는 어머니와 누나들과 방 한 칸 구석에서 잠을 자야만 했습니다.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통해 많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싶고, 당신의 유년 시절이 알고 싶어졌고, 무엇보다 다시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아버지를 원망하며 도박을 했지만, 지금은 아침마다 하늘을 보며 아버지께 오늘도 행복하시라고, 사랑한다고 인사드립니다.
모든 것을 잃고 실낱같은 희망조차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서야 빚 걱정없이, 거짓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4번의 채무를 갚아주실 때도 항상 도박을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 신용이 회복되면 나도 모르게 다시 도박장을 찾았습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도박으로 고통받았던 기억은 사라지고 오직 한탕으로 모든 것을 보상받고야 말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도박으로 절대 돈을 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제 앞에 남은 것은 감당하기조차 힘든 빚과 가족의 고통이었습니다.
도박으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게 했던 아내와 두 딸에게 죄스럽고 도저히 문제를 극복할 자신이 없어 아내에게 이혼을 요구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혼이 아닌 저의 손을 잡고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를 찾았습니다.
3개월 동안 상담과 치료공동체 프로그램의 철학을 통해 나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매주 한 번,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센터를 찾아 재정 교육을 듣고서야 오직 도박으로 크게 한탕 해서 돈을 갚겠다는 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중독자 가족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 응급환자이송단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1년 2개월 동안 알코올 중독자와 조현병 환자를 이송하면서 가족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19년이란 시간 동안 나와 가족, 그리고 지인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중독이 너무나 궁금해 중독재활도 공부했습니다. 낮에는 근로학생으로 일하고, 오후 3시에 퇴근하여 두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낸 후 대리기사로 새벽 2시까지 일했습니다. 몸은 많이 피곤했지만 집에 돌아와 잠든 아내와 아이의 얼굴을 보면서 힘든 것도 잊은 채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인천센터에서 근무하는 동안 개인회생으로 빚 대부분을 변제하고 8개월이 남았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만다 불안하고, 거짓으로 돈을 빌려 빚을 갚아야 했던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19년 동안 문제가 심각해질 때마다 가족에게 도박을 끊을 것을 약속하며 대리 변제를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버지 눈치를 보시며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하여 돈을 갚아주셨고, 당신이 너무나 괴로워 한 방울도 못 하시던 술을 드시고 동네를 방황하시던 모습을 보며 다시는 도박을 하지 말자고 수없이 나 자신과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도박장을 찾는 그런 제 모습이 괴물처럼 느껴졌습니다. 도박만 끊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참고 견뎌내야 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를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을 배운 후 19곳의 금융사와 사채업자의 채무압박에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받으며 꿋꿋하게 버텼고, 개인회생을 진행하면서 법원 직원이 집까지 들어와 모든 집기를 압류하는 것을 보며 가족에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하고 죄스러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번 더 성장한 것 같습니다.
도박에 미쳐 가족과 지인들을 속이고, 두 딸의 돌 반지를 팔아 도박장으로 향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거짓말로 배신감과 고통을 안겨 주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부럽게 느껴졌습니다. 헛된 망상의 꿈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랑하는 가족들조차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미치도록 고통스럽고 힘들었습니다. 가진 것을 모두 잃어도 제 가족만큼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아내 그리고 두 딸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면 숨을 쉴 수가 없었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이의 눈을 보면서 어렸을 때 아버지가 두려워 아버지 눈을 피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나와 같은 경험을 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정직만이 우리 가족을 건강하게 지켜줄 거라 믿으며 제 잘못된 성격을 조금씩 바꾸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상황이 좋아질 거라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 정직하고 겸손하게 지내며 노력한지 어느덧 4년… 지금은 빚의 압박과 부정직한 생활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경제적인 압박감으로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매일 들지만 그래도 꾹 참고 하루하루 정직하게 살고 있습니다.
도박병을 알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치료공동체를 통해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행복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박으로 못해본 많은 것을 하나하나 버킷리스트에 옮기며 작은 꿈을 이루어가는 소소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행복이 나에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 주었고,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나의 긍정적인 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서 너무나 마음이 편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가고 있어서 너무나 뿌듯합니다.
나의 꿈을 만들어가고 있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가끔 화도 낼 수 있어서 마음이 후련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게 되어서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아내와 두 딸에게 떳떳한 남편이자 아빠로 바뀌고 있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행복을 지키기보다는 또 다른 행복을 찾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해 가을, 처음으로 가훈이 생겼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행복해진다.”
출처: 2020년 회복자 성장대회 수기집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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