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믿음직한 사람이 된다는 것
도박을 중단했다가 다시 빠지게 되는 중요한 요인은 ‘방심’입니다.
이번 한 번만 스트레스 풀자면서 그 순간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나는 도박중독자임을 시인합니다.’
G.A.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을 뱉기까지 10년이 넘는 세월을 도박에 빠져 지냈습니다. 마지막 도박을 한 날로부터 꽤 지났지만 여전히 심각한 도박중독자이며 이를 치료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아마 평생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도박문제는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고,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회복 또는 성장을 했다고 아직 자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가 성장대회에 참석하기로 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피해를 준 내용과 내가 겪은 고통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여 도박중독의 폐해를 널리 알리고 다른 사람들이 이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예방하고 싶습니다. 둘째, 이 글을 통하여 내 치부를 드러내고 단도박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여 앞으로 더 이상 도박에 취하지 않고 싶어서입니다. 저의 도박문제를 크게 4절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1절
본격적으로 도박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자취하면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11년 전입니다. 경찰 조사를 받았고 형사처벌인 벌금까지 냈지만 도통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당시 주변 지인에게 많은 빚을 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박을 하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박 자체의 스릴에 이미 중독되었던 것입니다. 심지어 겁도 없이 회사에서 몰래 인터넷 사이트를 켜놓고 도박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연스레 회사에도 알려졌습니다.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었고, 부모님께 도박문제를 알리면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서 집단상담을 시작했습니다.
고향인 제주도로 내려간 후 정신과에서 부모님과 함께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치료를 받다 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되었고 도박에 대한 갈망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렵지 않게 재취업이 되어서 다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
2절
재취업한 기업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기업이었습니다. 신입 연수기간 중 입사 동기로부터 좋은 여자를 소개받아 연애도 시작하였고,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실무에 배치된 후 근무는 녹록지 않았습니다.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아침 여섯시 반에 출근해서 밤 열한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상이었고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도 심했습니다. 6개월도 안되어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게 되고, 스트레스 관리에 실패하면서 다시 인터넷 카지노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가진 돈이 떨어지면 현장의 하청업체에 돈을 빌려가며 도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곧 소문이 돌았고 오래 버티지 못해 권고사직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를 잘 견뎌낼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힘들었지만 동료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스트레스에 대하여 털어놓을 수 있는 좋은 선배도 있었고, 가족들에게 털어놓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도박의 맛을 봐서 그런지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의 실패가 제 인생을 크게 흔들었고, 도박중독의 단계가 매우 심각하게 된 시기였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에도 방황을 했습니다. 취업 준비를 핑계로 고시원에서 생활하면서 취업 준비보다는 대리운전 등 일용직으로 돈을 벌면서 도박으로 탕진했습니다. 돈을 딴 날은 딴 대로 돈을 다 써버리는 등 스스로 제어가 안되는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하루가 고통이었습니다. 오로지 도박할 때만 고통을 잊을 수 있었고, 돈을 다 잃은 후에 느꼈던 좌절감은 상상하기도 싫을 정도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온갖 거짓말을 지어내어 돈을 꾸거나 핑계를 댔습니다.
그렇게 한심한 삶을 살다가 문득 ‘이렇게 살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다시 재기할 것인가, 아니 재기 할 수 있을까?’ 너무나 충격적인 미래가 그려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정신을 부여잡고 이력서를 준비하여 계약직으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3절
새로 입사한 회사에서 성실하게 생활하였고, 계약직이었지만 정규직 못지않은 신뢰를 받으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회의석상에서 회사 임원으로부터 칭찬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 정규직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부지런히 생활했습니다. 일을 힘들었지만 스트레스 관리를 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갑내기 친구 덕분이었습니다.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지냈고 과거 도박문제까지 털어놨습니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생활이 안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여름날 잡기에 관심이 많은 직원 한 명이 강원랜드에 한번 놀러 가자고 꼬드겼고, 거기에 휩쓸려서 10만원을 가지고 강원랜드로 출발했습니다. 처음 가본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는 휘황찬란했습니다. 정선 입구는 각종 유흥업소와 전당포가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었고, 카지노에 입장하니 엄청난 수의 도박자들이 바글바글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흥분이 밀려왔습니다. 그날 10만원을 20만원으로 불려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재미 삼아 한 번으로 끝냈어야 하는 일은 다시금 스스로를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주말만 되면 200km나 되는 거리를 홀로 운전해서 가기 시작했습니다. 조금 모아둔 돈은 금세 탕진되었고, 또다시 동료와 하청업체에게 돈을 꾸어 도박을 했습니다. 중독자는 부끄러움이 없어집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꿔달라고 해댔고, 금세 소문이 퍼졌습니다. 1년 넘게 쌓아온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문제 직원으로 낙인찍혀 바로 사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독자는 학습능력이 상실되나 봅니다. 같은 행동을 세 번이나 반복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퇴사한 후에도 계속 강원랜드를 오가면서 도박을 했고, 갈 수 없는 날에는 인터넷에 접속하여 도박을 했습니다. 그렇게 또 폐인처럼 생활하던 중 운 좋게 지금의 직장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강원랜드에 영구 출입정지 신청을 했습니다. 아버지께 돈을 송금받아 전당포에 맡겨둔 차를 찾으면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났습니다. 이 눈물은 스스로에 대한 반성보다는 다시 살길이 생겨서 다행이라는 마음에 가까웠습니다.
4절
현 직장 입사 후 지방에 발령을 받아 생활하다 1년 후 연고지인 제주로 발령을 받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제주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안정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서 또 다른 도박에 손을 대게 되었습니다. 평소 야구를 마니아 수준으로 좋아했던지라 스포츠 도박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1만원 이내로 재미삼아 하던 것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센터 상담을 받으면서도 가족과 상담선생님을 속이면서 스포츠도박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리고 도박문제를 시인한 것이 작년 2월입니다.
그 후 본격적으로 단도박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제주의 G.A.모임 재창립을 모 선생님과 함께 주도하였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노력 중입니다. 최근 제주센터에서 <벤이 돌아왔다>라는 영화를 상영해 부모님과 함께 보았습니다. 약물중독을 소재로 한 영화인데, 같은 장면을 보더라도 제가 보는 관점과 가족이 생각하는 관점이 많이 달랐습니다. 일반인들이 중독자를 이해 못 하는 게 사실입니다. 사실 저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결국 파행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뻔히 알고 있지만, 그 순간의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습니다.
“도박을 중단했다가 다시 빠지게 되는 중요한 요인은 ‘방심’입니다. 이번 한 번만 스트레스 풀자면서 그 순간의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요즘도 저 자신에게 걱정이 많습니다. 회사 일은 바쁘고, 코로나로 중단되었던 스포츠 경기들이 재개되고, 이제는 스마트폰으로도 온라인 카지노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도박에 노출되버린 것입니다. 많은 회복자분들이 재발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는 스스로를 완전히 제어할 자신이 없습니다. ‘방심’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 나가겠습니다.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하였지만 이렇게 성장대회에 나오게 된 것은 앞으로 더욱 성장하기 위함입니다.
제 삶의 목표는 도박을 완전히 끊고, “믿음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출처: 2020년 회복자 성장대회 수기집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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