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재활

회복경험담

도박경험자(도박자) [성인] 나에게 뻗어 준 도움의 손길

작성일2021-07-16 조회수891

 나는 차가운 한 평 바닥에 누워 창문 틈 사이로 겨우 들어와 준 한 줌 햇볕의 따스함에 의지했고, 불투명한 방향성과 정체성, 일련의 죄책감마저도 상실되어 버린 채 하루하루를 지옥 같은 공간에서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교도관에게 아버지 면회 소식을 전해 듣고 간 면회장에는 여느 평범한 가장의 모습이 아닌 몸도 마음도 지쳐 너무도 몰라보게 늙어버린 어느 도박중독자 아버지의 모습이었습니다.


 플라스틱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낡은 인터폰에 귀를 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던 못난 자식에게 당신께서는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내 아들 절대 포기 안한다. 밥 잘 챙기묵고 있으라”


 그 한마디의 단호함은 세상 어떤 단호함보다 무겁고 책임감 있게 다가왔고 억눌러왔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범벅이 되면서 한참 울음을 토해내다 보니 문득 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도망치고 싶었던건 가족들 품이 아니라 도박중독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었던 나 자신에게서 부터가 아닐까 하고 말이죠. 유독 춥게 느껴졌던 그해 겨울은 코로나라는 세계적인 대재앙이 닥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나 자신과 처절하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저는 20대 초반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에게 큰 생각 없이 어울리기 위해 스포츠토토를 배우게 되었고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그만할 수 있다는 비합리적인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나고 보니 남은 건 쌓여있는 독촉장들과 신뢰가 무너져버린 대인관계, 가족들의 불신 뿐 이었고 그렇게 매일을 살아가기 보다는 버텨나갔습니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으로 용서를 구하고 객지생활을 정리한 뒤 본가로 내려왔을 때도 잠시 멈췄을 뿐 머릿속에는 도박생각만 가득했었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시 한번 잘해보겠다는 다짐은 아마도 다시 한번 잘해서 이번엔 돈을 꼭 따보겠다는 나조차도 속여버린 거짓말이 아니였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다시 도박 생활을 이어나갔고 크고 작은 금전적 문제들에 부딪히면서 가족들의 걱정을 사고 결국 여동생의 권유로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부산울산센터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상담을 받으면서도 단도박의 의지가 크지 않았던 터라 시간이 지나면 또 유혹을 이기지 못했고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였습니다. 어느 날 걸려온 전화에는 아버지의 불호령과 함께 또 시작이냐는 한탄과 다그침 뿐 이였습니다. 무서웠고 그저 도망치고 싶은 마음 뿐 이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 넘게 여기저기를 떠돌아 다니면서 노숙 생활을 하며 지냈었고 모든 연락을 끊은 채 너무나도 먼 길을 떠나게 되었네요.


 저에게는 1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어릴 적에는 떨어져 살았던지라 가깝게 지내지 못했는데 저의 도박문제가 가족문제로 화두에 오르면서 저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위대한 힘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단도박을 결심하고 회복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조언을 주고 힘이되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렇게 방황을 하다 여동생을 만나 다시 시작해보자는 진심 어린 조언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동생이 살고 있는 제주도로 직장을 구해 가게 되었습니다. 3개월쯤 잘 지내다 또다시 나태함에 빠져 도박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역시 가족들이 알게 되기까지 긴 시간은 걸리지 않았습니다. 늘 도박을 하다 걸리면 욕을 먹고 약속하고 또 재발을 하게되는 무의미한 패턴들의 반복이었지만, 그때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항상 내 편이 되 줄것만 같았던 여동생의 한마디가 간신히 잡고 있던 무언가를 놓아버리게 만들었습니다. 


“ 오빠야 이제 그만하자 ”


단호하고 체념 한 듯한 메시지는 혼란스러웠고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또 제주도를 뛰쳐나와 무작정 서울에 가서 방황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개월이 지나 춥고 배고픔에 판단력이 희미해 질 때쯤 주머니에 남은 돈은 모아 작은 식당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고 계산을 하고 나가는데 이모님이 어디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으시더라구요.


 텅빈 식당에 혼자 기다리는데 카운터에 현금뭉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 맞습니다. 저는 그 돈을 훔쳐서 나왔습니다. 무작정 달렸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감정이었고 내 범죄가 걸릴까봐 무서웠고 그 사장님께 죄송했고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웠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뒤섞인 채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같은 잘못을 수차례 저지르면서 생활을 이어나갔었고 결국 적발이 되어 7개월의 수감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가족들은 다시 저를 찾아와 도와주었고 저 역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수감생활로 인한 강제적인 단도박 생활이 시작되었고 동시에 가족들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명확한 방향성과 목표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가끔 알바로 대리운전을 합니다. 대기시간에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거리의 사람들을 보면 그 예전에 밥도 못 먹고 거지처럼 떠돌아다니던 제 모습이 보입니다.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고 너무나도 불쌍하고 안타깝고 제 자신에게도 너무 미안합니다.


 제자리로 다 되돌려 놓을 순 없지만 그 기억도 안날만큼 오래된 도박을 하기 전의 내 모습을 애써 떠올려가면서 하루하루 살다보면 언젠간 얼추 제자리에 가까워진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센터에서의 개인상담과 매주 목요일에 있는 12단계 집단상담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이 회복의 과정에 있어 너무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박은 질병이지만 완치의 개념이 아니라 회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처럼 저 역시도 언젠가 또 재발을 할 수도 있고 그 역시도 회복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죽을 때까지 지킬 수 있는 한 가지 신념은 난 이제 도박을 끊었어 절대 하지 않을꺼야 라는 호언장담이 아니라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재발을 하더라도 무엇보다 소중한 내 가족들을 놓지 않을 것이고 동시에 여기 센터방문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도박을 하기 전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고 보다 더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저와 같이 힘든 시간을 보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는 가족들과의 관계가 힘들거나 문제가 있는 사람이 있다면


저처럼 스스로 도망치지는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고 숨게 되면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 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음지에서 드러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도박을 하고 또 그로 인한 수많은 문제들로 처절하게 자신과 싸우고 힘들어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감기가 걸리면 간호사의 주사 한대에 의지를 하듯이


우리의 아픔 또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모든 내담자 분들과 또 그들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가족 분들에게 진심으로 힘내시라는 응원과 격려를 아낌없이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 2021년 회복자 성장대회 수기집 – 나는 나를 사랑하고 싶다

공공누리 제 4유형(출처표시 + 상업적 이용금지 +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해당 저작물은 공공누리의 4유형 "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시나요?